오늘은 알고리즘이 짜주는 우리의 하루, 우리의 인생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유튜브, 인스타, 넷플릭스 등의 OTT/SNS에 의해 우리의 인생, 하루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탐구해보았다.
나는 하루의 마무리를, 또한 여가시간 때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며 즐기는데 문득,
이러한 인터넷 서비스들이 내 인생을 바꾸어 나가고, 만들어 나가고 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스스로 콘텐츠를 선택하고 즐긴다고 믿는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인스타그램을 켜고, 점심시간엔 유튜브를 보며 웃고, 퇴근 후엔 넷플릭스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이 하루의 구성이 정말 '내가' 고른 것일까? 우리는 자율적인 소비자인가, 아니면 잘 설계된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콘텐츠를 받아먹는 피동적 소비자일 뿐일까? 이 글에서는 알고리즘 기반 추천 시스템이 우리의 일상, 사고방식, 감정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해본다.
'보고 싶은 것'이 아닌 '보게 되는 것'
유튜브, 인스타그램, 넷플릭스는 모두 사용자의 취향을 파악해 콘텐츠를 추천한다. 겉보기에 이는 매우 편리한 기능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선택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방향으로 좁히는 역할을 한다. 사용자가 어떤 콘텐츠를 클릭하면, 그와 유사한 콘텐츠가 줄줄이 피드에 나타나고, 점점 다른 종류의 콘텐츠는 보이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특정 정치 성향의 영상을 몇 번 클릭했다면, 이후에는 그 성향의 콘텐츠만 계속해서 노출된다. 다른 시각이나 균형 잡힌 정보는 점점 밀려난다.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특정 유형의 외모나 스타일을 자주 클릭하면, 피드는 그 이미지들로만 가득 찬다. 이런 구조는 사용자의 시야를 좁히고, 알고리즘이 정한 프레임 안에서만 콘텐츠를 소비하게 만든다.
넷플릭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메인 페이지에 뜨는 '지금 뜨는 콘텐츠', '시청률 상위' 같은 섹션은 실제 사용자의 욕구를 반영한다기보다, 넷플릭스 자체 알고리즘이 만든 '가장 오래 붙잡아둘 수 있는 콘텐츠'의 목록이다. 우리는 이 콘텐츠를 '보고 싶은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보게 된 것'에 더 가깝다.
결국 우리는 자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좁은 터널 속에서 반복되는 추천의 고리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정보의 바다를 항해한다는 말은 이제 신화에 가깝다. 우리는 점점 더 좁은 수로에서, 점점 더 비슷한 것만 보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콘텐츠 다양성을 해친다. 새로운 시도나 독립 콘텐츠는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잘 노출되지 않으며, 결국 소수의 대형 콘텐츠가 독점하게 된다. 사용자는 다채로운 콘텐츠를 접하기 어렵고, 크리에이터는 알고리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본인의 스타일을 포기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이는 결국 콘텐츠 생태계의 획일화를 초래하며, 창작과 소비 모두를 위축시킨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감정까지 설계한다
콘텐츠 소비는 정보 습득 그 이상이다. 우리는 콘텐츠를 통해 웃고, 감동하고, 위로받는다. 그런데 이 감정 반응마저도 알고리즘의 설계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은 다소 섬뜩하다. 유튜브는 사용자가 어떤 지점에서 시청을 멈추는지, 어떤 구간을 반복해서 보는지, 어떤 영상에 더 많은 댓글과 반응이 달리는지를 분석한다. 이 데이터는 감정적으로 반응이 강한 콘텐츠를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점점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게 된다. 극단적인 정치 콘텐츠, 자극적인 범죄 다큐, 감정이 과잉된 브이로그가 추천 알고리즘 상위권을 점령하는 이유는 이들이 감정 반응을 유도하는 데 능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드라마의 한 회를 가장 긴장감 넘치는 지점에서 끝내고, 인스타그램은 당신이 가장 자극적인 썸네일에 멈추도록 설계된 썸네일을 띄운다.
이러한 방식은 콘텐츠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게 만든다. 우리는 웃기 위해 유튜브를 켜지만, 알고리즘은 우리가 슬퍼하게 만들 콘텐츠를 추천할 수도 있다. 이처럼 알고리즘은 감정의 방향을 결정하고, 우리는 그 감정에 반응할 뿐이다.
결국 우리는 ‘기분 전환’을 위해 콘텐츠를 찾지만, 실제로는 콘텐츠가 우리의 기분을 선제적으로 조작하고 있다. 자율성이 있는 감정 소비가 아니라, 감정 유도를 목적으로 한 콘텐츠 구조에 익숙해진 우리는, 어느 순간 ‘내 기분’조차 스스로 정의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게다가 감정 유도는 소비 패턴과 직결된다. 알고리즘은 슬픔, 분노, 공포 등 강한 감정을 유도해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이어지는 광고나 유료 서비스 구매로 연결시키는 구조를 갖는다. 이것은 단순한 추천이 아니라, 감정과 소비를 연결한 정교한 수익 시스템이다.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도 소비되고 있는 셈이다.
알고리즘의 시간 절도: 소비가 아니라 침식
추천 콘텐츠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관심을 끄는 것을 넘어서, 사용자의 시간을 강제로 점유한다는 데 있다. 유튜브의 자동재생, 넷플릭스의 다음 회차 자동 시작, 인스타그램의 무한 스크롤 기능은 모두 사용자가 앱을 떠나지 못하게 설계된 구조다.
이러한 시스템은 사용자의 시선을 붙잡고, 의식을 잠식한다. 10분만 보려던 유튜브가 1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유는 당신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알고리즘은 당신이 몇 분마다 자리를 뜨는지, 어떤 길이의 콘텐츠를 더 오래 보는지를 이미 학습하고 있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음에 어떤 영상을 띄우면 당신이 더 오래 머물지를 계산해낸다.
넷플릭스는 시리즈가 끝날 무렵 15초의 여유조차 주지 않고 다음 회차를 재생한다. 인스타그램은 당신이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주는 무한 스크롤을 설계해 ‘끝’이라는 개념을 없앴다. 우리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에게 시간을 소비당하는 셈이다.
이러한 침식은 단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점점 집중력을 잃고, 창의적인 사유 대신 수동적인 스크롤에 익숙해진다. ‘시간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이제 흔한 푸념이 아니다. 그것은 알고리즘이 당신의 하루를 분 단위로 잘게 쪼개서, 그 틈틈이 당신의 집중력과 감정을 빼앗아 간 결과다.
더 나아가, 시간 침식은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콘텐츠에 몰입할수록 오프라인 관계는 느슨해지고, 인간관계는 점점 피상적으로 변한다. 알고리즘은 당신을 화면에 붙잡아두지만, 그만큼 당신은 현실에서 멀어진다. 정보 과잉과 시간 부족이 결합된 오늘날,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접하고도 더 적은 것을 기억하는 상태가 되어간다.
우리는 더 이상 콘텐츠의 주인이 아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을 학습하고, 감정을 설계하며, 시간을 통제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주도권에 관한 이야기다. 물론 알고리즘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다. 추천 시스템은 때로 유익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고, 새로운 것을 만날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분명 위험하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오늘 내가 본 콘텐츠, 정말 내가 선택한 걸까?” 그리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나의 하루를 내가 설계한다”고. 만약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면, 이미 당신의 하루는 알고리즘이 짜고 있는 중이다. 자율적인 소비자는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지금의 디지털 소비 구조를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신의 시간, 당신의 감정, 당신의 관심은 모두 자산이다. 그것을 누가 쓰고 있는지, 다시 점검해야 할 때다. 콘텐츠를 고를 때 한 번쯤 멈춰 생각하자. “이건 내가 진짜 보고 싶어서 고른 걸까?”라는 질문 하나가 알고리즘이 짜놓은 인생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일지 모른다.